이승원이 걸어온 대본 팔도유람가

레이 커즈와일도 있고 피터 드러커도 있다. 여러 분야에서 일하면 어느 한 분야에서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을 오서오능(鼯鼠五能)이라 했다. 날 줄은 알지만 지붕은 넘지 못한다. 나무를 타고 어줍잖고 수영은 해도 냇가를 건너지 못한다. 굴은 파지만 제 몸 하나 감추지 못한다. 이를 두고 오서오능이라 한다. 그러나 커즈와일이나 피터 드러커는 자신이 궁구하게 파고 들어간 영역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이다. 옛 고사가 탄생했을 당시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없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본인이 일하거나 공부하고 싶다면 어느 영역에서나 빛을 발할 수 있는 멀티의 시대에 살고 있다.

테너 이승원은 지금 테너 이승원이라는 말로 부르기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물론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는 테너이자 소설가이고 뮤지컬 대본가이자 오페라 극작가다. 최근에는 약 25편에 달하는 오페라 대본가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도 불과 몇 년 사이에 말이다. 기사 초장부터 길긴 하지만 이승원의 작품을 서수남, 하청일의 ‘팔도유람가’ 방식으로 불러볼까?

자, 지난해부터 벤자민 버튼의 시간대로 달려보자. 창작 오페라 ‘행복마을 습격사건’(장민호 작곡 파주 아르티스타홀 초연 2020), 창작 오페라 ‘비:중원고구려비의 연가’ (윤학준 작곡 충주문화예술회관 초연 2020), 창작 오라토리오 ‘신짜오 하노이’(정순도 작곡 베트남 하노이 국립극장 코로나19로 취소), 창작 뮤지컬 ‘새벽녘’ (SMN 작곡 남양주 우당아트홀 초연 2019), 창작 오라토리오 ‘그날의 외침 1919’(정순도 작곡 대전예술의전당 초연 2019), 창작 오페라 ‘어사 박문수’(장민호 작곡 평택 북부문예회관 초연 2018), 창작 뮤페라 ‘신세계 독도’(이보렴 작곡 포항 영일대 야외무대 초연 2018), 창작 뮤페라 ‘칼라스’(정순도 작곡 대전 예술가의집 초연 2018), 창작 뮤지컬 ‘당신과 함께’(SMN 작곡 남양주 우당아트홀 초연 2018), 창작 합창음악극 ‘마지막 편지’(허걸재 작곡 대전예술의전당 초연 2018)…

휴~ 여기서 숨 한번 돌리자. 창작 오페라 ‘메밀꽃 필 무렵’(정순도 작곡 원주 치악예술회관 초연 2018), 창작 오페라 ‘소서노의 위대한 사랑’(김동은 작곡 인천 소래포구 야외무대 초연 2017), 창작 뮤지컬 ‘꿈을 그리다’(SMN 작곡 남양주 우당아트홀 초연 2017), 창작 오페라 ‘마태 수난곡’(정순도 작곡 금호아트홀연세 초연 2017), 창작 뮤지컬 ‘옛사랑(SMN 작곡 대학로 소극장 초연 2016), 창작 오페라 ‘가리베가스’(김시형 작곡 구로아트밸리 초연 2016), 창작 오페라 ‘단종의 눈물’(정순도, 성용원 작곡 원주 치악예술회관 초연 2016), 창작 뮤지컬 ‘나인’(SMN 작곡 대학로 브루노아트홀 초연 2016), 창작 칸타타 ‘이 또한 감사하리라’(정순도 작곡 예술의전당 IBK홀 초연 2015), 창작 레퀴엠 ‘희망의 불꽃’(성용원 작곡 광주 빛고을문화예술회관 초연 2015), 창작 뮤지컬 ‘아낌없이 주는 나무’(SMN 작곡 상명아트센터 초연 2015), 창작 뮤지컬 ‘바나나 꽃이 피었습니다’(2015), 창작 오페라 ‘나인 테일즈’(성주문화예술회관 초연 2015), 창작 뮤지컬 ‘새방꿈’(SMN 작곡 홍대 배짱이홀 초연 2014) 창작 칸타타 ‘아! 결혼’(이호준 작곡 예술의전당 초연 2012) 등 작품을 나열하면 미하일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된다. 이밖에 2021년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도 3~4편의 창작 오페라, 뮤지컬, 칸타타 등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앉으면 상상의 세계가 실타래처럼 이어지는 괴짜 성악가

“구로문화재단이 주최한 창작오페라 중에 ‘가리베가스’가 있습니다. 가리봉동 + 라스베가스의 합성어로 1970~80년대 공돌이 공순이 이야기예요. 시사가 담긴 내용이거든요. 구로동맹파업, 경찰 진압, 야학, 당시의 노동실태 등의 사회상을 담은 풍자 오페라입니다. 당시는 화장실도 작업반장이 허락해야 갈 수 있던 시대예요. 작업반장이 혜진이를 치근덕거립니다. ‘어~ 혜진 씨, 어우동이라는 영화 나랑 가서 볼까?’

혜진이는 야학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해요. 그러자 작업반장이 말합니다. ‘이봐. 혜진 씨 내가 사정 봐주는 거 알지? 야학 간다고 해서 야근도 빼주는데 이런 식이면 재미없어~’ 하면서 계속 치근거리죠. 오페라가 절정에 오르면 마침내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나고 경찰이 투입됩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사회에서 성공한 혜진이 가리봉동, 지금의 가산디지털단지에 오게 되는데 그 옛날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티셔츠~ 티셔츠~ 값싸고 질 좋은 티셔츠가 있어요.’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작업반장이었죠.”

이승원은 언제 만나든 상상의 이야기가 그의 펌 머리만큼이나 머리 주변에 너울너울거린다. 이날도 그랬다. 재미있는 작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몇 년 전 구로아트밸리에서 공연했던 가리베가스를 만담가처럼 얘기해주었다. 대체 그는 어떻게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쏟아낼까?

[출처] 월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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